
Stuart
since 1999년 12월 5일~
“난 그냥 쥐가 아냐. 이 집의 가족이야.”
“I’m not just a mouse. I’m also a member of this family.”
제목 Title
스튜어트 리틀
작가 Author
엘윈 브룩스 화이트
이름 Name
스튜어트 리틀
생년월일 Date of Birth
1999년 12월 5일
출생지 Place of Birth
알 수 없음
거주지 Address
뉴욕시 공립 보육원에서 뉴욕 5번가 갈색 벽돌집으로 이사
관계 Relationship
맘씨 좋은 리틀 씨 부부, 스튜어트를 못 마땅해하는 형 조지와 반려 고양이 스노우벨과 하루아침에 급 가족이 됨
직업 Occupation
가족애가 오겹살만큼 두터운 리틀가의 둘째 아들이 된 입양아
특이사항 Special Note
5cm도 안 될 정도로 아주 작지만, 뭐든 혼자서 씩씩하게 척척 해내는 억척이. 위대한 개츠비처럼 아메리칸 수트 스타일을 찰떡같이 소화함
공식사이트 Official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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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Species
생쥐

미키마우스 덕에 우리에게 친숙한 생쥐는 쫑긋 솟아있는 둥그스름한 귀, 가지런히 모은 공손한 두 손과 자기 몸만큼 긴 꼬리를 가진 아담한 크기의 소유자. 이솝 우화의 ‘서울 쥐’처럼 주로 도시에 살며 무리생활을 한다. 일 년에 많게는 10번 임신할 수 있고, 한 번 출산할 때 12마리까지 낳는 굉장한 번식력으로 지구상에서 인간 다음으로 많이 사는 포유동물이다. 중국 사람처럼 전 세계에 어디에나 장소 불문하고 살고 있으며, 사람 먹는 것은 다 먹을 줄 아는 잡식성이다. 또 뇌는 인간의 뇌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 사람과 쥐의 유전자 정보가 99% 흡사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 동물실험에 거의 80%를 차지한다. 툭 튀어나온 두 앞니는 치근이 없어 평생 자라나는 관계로, 갈갈이처럼 계속 앞니를 갈아줘야 한다. 철인 3종 경기 선수 못지않게 도약, 기어오르기, 수영에 베테랑이다. 멸종 위기 등급은 관심 대상(LC)이다.
안녕! 2019, 안녕? 2020!

600년 만에 온다는 ‘황금 돼지의 해’라고 떠들썩했던 게 어제 같은데, 어느덧 2019년이 저물었다. 늘 그렇듯, 쏜살같은 세월은 눈 깜빡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처럼 거꾸로 가면 좋을 텐데, 우리의 시계는 아주 피도 눈물도 없이 째깍째깍 잘도 간다. 그러나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어김없이 새로운 오늘은 찾아오니 말이다.
아아, 비록 사랑하는 우리의 2019년은 갔지만, 2020년의 해가 쨍하고 밝았다.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이다. 경자년의 경자는, 옆집 경자 이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육십갑자(六十甲子)에 따라 10간의 ‘경(庚)’과 12간지의 ‘자(子)’를 붙여, 말 그대로 ’흰 쥐띠의 해’라는 뜻이다. 오늘 경자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흰 쥐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스튜어트 리틀’ 이야기로 새해 첫날의 페이지를 장식해보려 한다.
“드디어 오늘이 왔어!”

2020년의 첫날이 마냥 설레는 우리처럼, 뉴욕에 사는 꼬마 조지 리틀도 두근두근, 오늘이 몹시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무엇이 이 작은 소년을 방방 뛰게 했을까? 그건 그토록 갈망하던 동생이 생기는 날이기 때문이다.
또래보다 몸집이 작은 게 컴플렉스인 조지는 맨날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피규어나 만들며 놀곤 했다. 하지만 더이상 혼자 놀지 않아도 된다. 오늘부로 함께 공놀이와 레슬링을 할 수 있는 동생이 생기니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조지가 새 신을 신고 하늘에 닿을 것처럼 폴짝폴짝 뛰는 그 기분이 새삼 이해가 된다.
“네 동생인 스튜어트란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닥친 현실은 처참했다. 리틀 부부가 동생을 소개했을 때, 조지의 부푼 기대는 아주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아무리 본인보다 작은 동생을 원한다고 강조하고 강조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작아도 작을 수 있을까! 처음 만난 동생은 숨은그림찾기 하듯 자세히 보아야 보일 만큼 작았다. 게다가 특이해도 너무 특이했다. 생쥐가 동생이라니, 정말 순풍산부인과 정배가 이마를 때리고도 남을 ‘맙소사!’가 아닐 수 없다.
‘이게 진짜일 리 없다’는 반응은 조지뿐이 아니었다. 이 집의 반려묘 스노우볼에도 하늘이 두 쪽 날 일이다. 한입 거리도 안되는 생쥐를 하루아침에 주인집 아들로 모셔야 하는 집고양이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스타일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스노우볼은 행여라도 동네 고양이에게 소문이라도 날까 봐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지경이다.


“동생이 아니라 그냥 쥐예요.”
다른 종의 입양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보육원장의 말이 옳았던 것일까? 스튜어트의 특이함이 리틀 가족에게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던 리틀 부부의 판단과는 다르게, 조지는 스튜어트를 동생으로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지에게 스튜어트는 공놀이도, 자전거도, 볼링도 같이 칠 수 없는 보통 쥐일 뿐이다.
뉴욕 공립 보육원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스튜어트, 맘씨 좋은 리틀 부부를 만나 드디어 동화 속 기적을 누리나 보다 하고 기뻤다. 하지만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리틀가의 불청객이 되어버린 스튜어트다. 다른 이였다면 자기를 반겨주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에 주눅들 만도 할 텐데, 우리의 스튜어트는 이상하게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외친다.
“난 ‘스튜어트 리틀’이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싸움을 하려면 상대를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살아생전 귀에 닳도록 강조하지 않았던가! ‘너 자신을 알라’고.
스튜어트야말로 스스로 누구인지 아는 영리한 쥐였다. 피 한 방울도 섞이지도 않고, 종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리틀 부부와 함께 보육원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스튜어트는 깨닫는다. 자신은 이제 리틀가의 일원이 되었다는 걸! 이제 자신이 ‘스튜어트 리틀’이 되었다는 걸 마음에 단단히 새겨넣는다.
형 조지에게 동생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도, 스노우벨이 쥐는 쥐구멍에 살아야 한다고 조롱해도 스튜어트는 쉽사리 속상해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스튜어트 리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뛰어! 포레스트! 뛰어!”

영화 <포레스트 검프, 1994>의 포레스트는 다리가 불편해 보조 장치에 의지해 걸을 수밖에 없던 소년이다. 불편한 신체와 어리숙한 지능을 가진 포레스트는 친구들에게 돌멩이를 맞으며 ‘쇠다리’라고 놀림을 받는다. 도망치라는 여자 친구 제니의 말을 듣고 엉겹결에 달리게 된 포레스트는 굉장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바람돌이 소닉처럼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딜 가나 바보 천치 취급을 받는 포레스트지만, 그래도 본인에 대한 네 가지 사실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다. 첫째,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것, 둘째, 탁구를 잘 친다는 것, 셋째, 제니를 사랑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나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것이다. 포레스트는 늘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전 포레스트 검프예요.”
우리는 남일에 관심이 많다. 누가 어디에 살며 집에 방은 몇 개고, 화장실은 몇 개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브랜드의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메는지, 누구와 연애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싶어한다. 심지어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아주 잡다구리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고,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대해 막힘없이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리틀이면 누구나 찾을 수 있어!”

스튜어트는 자신이 그냥 평범한 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리틀 가의 한 구성원으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쥐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 확실한 존재감이 마치 저축성 보험을 들어놓은 것 마냥, 스튜어트의 마음을 두둑하고 든든하게 해줬다. 축구장 면적의 56배나 되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집을 찾지 못해 또다시 고아가 될 위기에 처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컴백 홈’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다.
Who am I?
인생이란 롤러코스터에 탄 이상, 분명 경자년에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변화무쌍하게 벌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럴 때 스튜어트와 포레스트처럼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올 한 해 동안 진지하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보다 ‘나’를 탐구해 보는 시간을 마음껏 가져보는 거다. 어떤 이를 만나더라도 기죽지 않고, 내 이름 석 자를 당당히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신중하게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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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견은 쉽게 버려진다. 엄청난 활동량과 식욕이 감당이 안 된다는 이유가 주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운 좋게 입양이 돼도, 다시 파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해외 입양이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천운으로 어디 입양됐다 쳐도, 매일 시험 보는 기분으로 살았을 거예요. … 저도 사랑받으려고 매일 아득바득 살았어요. 미움받으면 나도 걔처럼 파양될 수 있으니까.”
어느 입양견의 독백이 아니다. 2019년 최고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오는 대사다. 파양된 동백의 자리를 메꾼 또 다른 입양아 미연의 말이다. 그런데 이 대사, 왜 이리 입양견의 목소리같이 들릴까. 괴로움은 늘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어느날 갑자기 친구가 절교 선언을 해도, 남자친구가 이별 통보를 해와도 몇 날 며칠을, 아니 몇 년씩 괴로움에 밤을 지새는게 사람이다. 그런데 핏줄에게 버려지는 그 마음은 오죽할까.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들의 상실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외로워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젠 감당이 안 돼요.”라는 게 파양의 뻔한 레파토리다. 반려견을 키우기 전, 한 번쯤 신중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도 감정을 느끼는 존엄한 생명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또 유기동물입양에 관심이 있다면, 전국의 유기동물 상세정보와 입양 방법을 제공하는 유기동물 입양 전문 앱인 <꼬리>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겠다.